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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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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내 가장 북쪽의 마을 카미쓰시마 쵸에 위치한 한국 전망대는 한국의 이미지를 담아 만든 팔각정 건축물로 계획 단계부터 완성까지 한국산 재료구입. 전문가 초빙 등 철저히 한국풍을 고집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거제도와 부산시의 윤곽을 육안으로 뚜렷히 볼 수 있어
그야말로 '국경의 섬' 임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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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년 음력 2월 5일 정원 108명의 역관사를 태운 배가 아침 부산을 떠나 대마도로 향하던 중 급변한 날씨 때문에 와니우라 항구를 목전에 두고 조난, 전원이 사망하는 비참한 해난사고를 당하였다.
사고의 역사적 배경이 선린우호를 바탕으로 한 국제 교류에 있음을 기념하여 1991년 3월, 한국과 일본의 유지들이 힘을 모아 한국전망대 안에 위령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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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 쵸에는 약 3천년 전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유적 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그 시대의 문화유산들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를 수집하고 미네 쵸 만의 향토 자료를 보존한 미네역사자료관에서는 대마도 사람들의 생활상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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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마 쵸의 상징인 이 신사는 히코호호데미노 미코토와 토요 타마 히메를 제사지내는 해궁으로 바다신을 모신 신사로는 가장 오래된 신사이며 가야의 김수로왕의 자손이 대마도로 건너와 세웠다 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본전 정면의 바다속에 서 있는 토리이(신사 문)는 만조시 2m정도 바다속으 로 가라앉아 파도가 잔잔한 아소만과 어우러져 신화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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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만을 360도로 둘러볼 수 있는 유일한 전망대이며 깎아지른듯한 산과 푸른 바다가 절묘하게 펼쳐진 익곡의 조화는 그야말로 최고의 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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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원래 하나의 섬이었으나 1900년 일본해군이 섬의 가장 좁은 부분을 뚫어 인공해협을 만들었다.
이에 두 개가 된 대마도의 윗섬과 아랫섬을 이은 다리가 만제키바시이다.
간조시 형성되는 조류의 소용돌이를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관광객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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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의 대 유학자이자 의병자인 면암 최익현 선생은 을사조약 발효 후 의병활동을 하다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대마도로 잡혀오게 된다.
이곳에서 선생은 일본의 식사를 거절하고 단식 투쟁 하시다가 결국 순국하게 된다.
선생의 유해는 백제의 비구니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수선사에 안치되었다가 부산으로 이송되었다.
이에 선생의 넋을 기리고자 1986년 한일 유지들이 힘을 모아 수선사 경내에 순국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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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10대도주 법호를 딴 절로 1611년 건립된 조선과의 외교를 담당한 장소인 이테안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또 조선통신사의 한 사람인 학봉 김성일 선생의 시비가 있어 유명하다.
현재의 시비는 2000년에 새로이 세운 것이며 이곳에는 대마도의 유일한 유스호스텔 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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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옛 지도와 왜관도, 조선통신사의 행렬도가 보관되어 있으며 소가의 문서와 고대 유물, 대마도의 천연기념물 등 여러 가지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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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 조선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한일합방 후 고종황제의 딸 덕혜옹주는 대마도 영주 소가씨의 자제와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낮선 이국에서 설움받으며 고초를 겪던 덕혜옹주는 결국 이혼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쓸쓸히 여생을 마치고 만다.
1931년 세워진 비는 도로공사로 철거되어 깨진 채 방치되어 있다가 2001년
11월 10일 현재의 킨세키성 유적 안 시미즈 공원에 새로 세워져 있다.
정작 비석에는 이씨왕조와 소 백작가문이 열렬히 축하하며 잘 살았다는 결혼축원 봉축비라 씌여 있어 일본인들의 과거를 감추려는 이중성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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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하라 시내에 있는 신사로 대마도의 대표격인 신사다.
연중무휴에 입장료는 없으나 보물전 관람은 따로 돈을 내야 한다.
삼한에 임나일본부를 건설했다는 가상의 인물인 신공황후를 받들고 있어 일본인들의 역사왜곡의 증거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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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4년 10월, 합포(마산)를 출발한 고려와 몽고의 3만 일본정벌군은 대마도의 코모다하마 해변으로 상륙한다.
이때 대마도의 병사들은 대항하나 중과부적으로 패하여 전원 목숨을 잃었다. 이에 그 혼을 달래기 위해 코모다하마 신사에서는 전사한 병사들의 위패를 받들고 있으며 매년 11월에 코모다하마 신사 축제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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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네 지방에는 지금도 돌로 지붕을 쌓은 고상식 건물인 이시야네 (돌지붕)가 보존되어 있는데 강풍과 화재를 대비하여 지붕을 널빤지 모양의 자연석으로 올렸으며 창고로 이용되었다.
지금은 몇 개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으며 일본에서는 대마도에서만 볼 수 있는 진귀한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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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흰 등대로 유명한 쯔쯔자키에는 서로 맞부딫치는 파도가 유명하고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다.
그리고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탄약고 및 전망대가 있으며 일본 신도의 원류라 할 天道신앙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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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하라 정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려한 자연경관을 그대로 살린 공원으로 강 전체가 천연 화강암으로 덮혀진 일본전국에서도 진귀한 곳이며 구름다리, 산책로, 놀이기구, 캠프장 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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